건축이야기/실내외 디자인

도쿄 분쿄구의 1백년 고택...^^

갯마을 과 갯바위 2011. 12. 2. 21:47

도쿄의 도심 속, 웅장한 규모의 자연 정원 속에 오래된 집이 한 채 숨어 있다. 1백여 년 전 메이지 시대에 지어져, 동서양의 양식이 완벽히 조우하는 고택! 전통적이지만 결코 고루하지 않은 집 쇼우엔에는 늦가을 단풍이 한창이었다.



1, 2 이 집에 들어선 뒤 처음 만나게 되는 일본식 다다미방은 명치 천황이 올 때를 대비하여 지은 거실 ‘오시로마’였다. 우리말로는 큰 방이라는 뜻. 호위 무사를 숨기기 위한 벽장과 그 옆의 종 모양 장식장, 그리고 오른쪽에 감춰진 도코노마가 있는 방까지 포함하면 다다미가 42.5장(2장이 1평 크기) 깔렸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다. 방 밖의 복도까지 합치면 다다미가 총 80장이나 깔려있다. 이 방에서 내다보는 건물 뒤쪽 정원의 단풍 풍경이 이 집의 백미다.

3 일본식 다다미방 오시로마에도 서양식 디자인의 등을 걸어놓았다.

4 6천 평 규모 정원에 쇼우엔이라는 이름의 4백 평 규모 본관 건물, 그리고 별채를 포함한 별도의 4백50평 규모 건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장관급 대신이었던 이 집의 주인 다나카 백작은 천황이 올 때를 대비하여 완벽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결국 천황의 방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다

일본의 대표적 출판 기업 고단샤에서 소유한 쇼우엔은 6천 평 규모의 일본 고유 회유식 정원 속에 위치한 약 4백여 평 크기의 건물이다. 평소 일반인에게 비공개로 관리되는 곳이기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는데, 때마침 찬란한 붉은 단풍에 감싸여 일 년 중 최고의 미감을 자랑한다는 시기였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막부 말기 ‘타도 막부 운동’을 주도하고 이후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다나카 오코켄입니다. 명치 정부의 많은 요직을 거친 ‘궁내 대신’인 그는 미국 유학 중에 쌓은 지식을 이용해서, 이 집에 다양한 서양식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집에는 일본식 공간과 함께, 동시에 우아한 서양식 공간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과연 쇼우엔은 첫인상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단풍나무가 늘어선 긴 진입로를 따라 건물 앞까지 다다르면 마치 월 가든인 양 하늘로 뻗은 정원수를 마주하게 되는데, 일반 일본식 정원과는 그 규모부터가 천지차이다. 게다가 건물 안은 또 어떠한가. 현관을 지나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 바로 좌우로 위치한 양실, 즉 서양식 응접실이다. 가벼운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서양식 인테리어 양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더 안으로 들어서면 정통 일본식의 다다미방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천황이 방문할 것을 대비하여 규모 있게 지었다는 메인 거실 ‘오시로마’은 상류층을 위한 정통 다다미방의 꾸밈을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천황의 호위 무사들을 숨기기 위한 벽장과 천황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크게 지은 도코노마(다다미방의 정면에, 바닥을 한 층 높여 만들어놓은 곳)만 보아도 집주인의 화려한 취향과 대단한 재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1 현관 입구의 서양식 응접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드라마 「화려한 정원」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는데,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에 방송에조차 장소 표기를 하지 않았다 한다. 10년 전 세계 잡지 연합 모임을 일본에서 주최했을 때, 그들을 위한 파티를 진행했던 것이 유일한 공식 공개였다고.

2 일본 전통풍의 건물 지붕은 3백 년 전 유행 양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불교의 종 모양에서 디자인을 따왔고, 갑옷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3 실내 복도를 따라가면, 옛 주인의 실거주 공간에 이르게 된다. 그 복도 길의 중간, 전통 일본식의 소담한 중정이 숨어 있다. 어두운 실내에 빛을 들이기 위해서 만든 이 중정의 이름은 ‘평정원’이다.

4, 5 다나카 집안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겨 넣은 유리창. 당시에는 일본에 유리 가공 기술이 없어서 집주인은 영국까지 특수 무늬 유리를 주문했다고 한다.

6 중문을 통해 집 둘레를 돌아보면 자연스레 회유식 정원을 감상하게 된다. 2개의 다른 계곡이 건물과 정원을 사이에 두고 흐르고 있고, 계곡 아래쪽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가 살았던 공간은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7 현관에서 바라다본 앞마당의 풍경. 전면의 정원수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8 대문에서 쇼우엔 본관에 이르는 단풍나무 길.

자연과 건축의 조화미를 갖추다

“쇼우엔은 현재 역사적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평가를 받는 건물입니다. 사찰을 제외하고 이 정도 규모의 개인 주택이 이렇게 잘 보존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죠.” 관계자의 말처럼 쇼우엔은 메이지 시대의 주요 건축 사적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화재 수준의 규모와 관리 상태를 자랑한다.

실제 본관 밖 왼쪽에 위치한 중문을 통과하여 정원 전체의 대지를 쭉 둘러보니, 왼쪽으로는 자연 그대로의 시원한 계곡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쇼우엔 건물과 널따란 주 정원이 자리하고 있어 규모가 상당했다. 또한 일본 고유의 회유식 정원 구조, 즉 건물의 사면을 자연이 둘러싸는 위치에 집터를 잡았기 때문에, 집과 단풍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최고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약간의 벽지를 다시 도배한 것 말고는 집 상태가 1백년 전 건축 당시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메이지 시대 유력 대신의 집이었던 만큼,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자재들만을 사용했고, 그것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 특히, 다나카 집안의 문양을 새겨 넣은 창문의 유리는 영국에서 수입해 왔을 정도라니, 집에 대한 건축주의 애정이 물씬 느껴진다.

소담한 살림 공간이 품은 오래된 이야기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구석구석 숨은 방이 많은 대저택에서 가장 소박한 장소가 바로 옛 주인이 기거했던 실주거 공간이었다. 다다미 네다섯 장이 깔린 소담한 규모의 방들은 각각 참새방, 아야메(창포와 비슷한 일본식 풀의 명칭)방 하는 식으로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고, 장식장에는 나름의 그림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궁내청 대신이었던 첫 주인 다나카 가족을 비롯, 세 번째로 이 집의 주인이 된 고단샤 출판사의 오너 노마 일가 또한 이 소박한 방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한다.

“초대 사장인 노마 세이지는 이 집에 거주하는 동안 종종 큰 거실인 오시로마에서 직원들과 편집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시골에서 상경한 어린 소년 사원들을 이 집에 거주하게 한 뒤, 소박한 야식을 나눠 먹기도 했지요. 현재 사장인 노마 사와코 또한 이 공간에서 실제로 거주했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을 초대해 쇼우엔의 정취를 즐겼습니다.”

고단샤 일가의 추억을 전해 듣고, 그들이 실제로 기거했다는 방에 앉아 창밖을 바라다보았다. 자연에 깃든 삶이 마음을 정화하고 감성을 풍부하게 함은 새삼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일 터. 요즘도 메마른 일상에 시달릴 때면 쇼우엔을 찾아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는 그들에게, 이 집은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쉼터이지 않을까?



1 건물 뒤쪽에서 서양식 응접실을 바라다보았다.

2 노마 일가가 기거했다는 방 중 하나. 복도의 통창 밖으로 정원의 풍경이 내다보인다. 노마 일가는 40년 전까지 이 집에서 기거했고, 이후 근처의 현대식 건물로 이사한 뒤에도 수시로 쇼우엔을 찾았다 한다.

3 바쇼의 시구처럼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4 뒤쪽의 정원에서도 다다미 거실 ‘오시로마’로 바로 올라갈 수 있다.

※현재 쇼우엔은 비공개 건축물이므로 일반인은 견학할 수가 없습니다.

쇼우엔을 나서기 전, 이름에 담겨 있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3백30년 전 에도 시대의 유명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가 이 집터에서 거주했었고, 그의 이름에서 ‘쇼(蕉)’ 자를 따왔다는 것. ‘우(雨)’ 자는 본관에서 조금 떨어져 위치한 다실의 이름 ‘사미다리엔’에서 따온 것으로 결국 ‘시와 비’가 머무는 정원이라는 서정적 의미가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 같은 공간에서 이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촬영 시작 전 관리인이 들려준 바쇼의 시구가 머리를 스치었다. ‘이 길 한 가닥 가는 사람도 없이 저무는 가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조우하는 집의 가을이 그렇게 깊어갔다.